미망의 인생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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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루 해가 지면 저녁밥을 먹고서는 또 마을사랑방으로 갔습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놀고, 아이들은 또 한쪽에서 따로 아이들대로 놀거나 어른들 노는 것을 구경하면서 어른들 노는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그러다 마을에 제사가 있는 날은 잠 안자고 기다리고 있다가 기어코 또 그 제사음식을 얻어먹었습니다.
혹, 마을에 잔치가 있는 날은 그날이 아이들한테도 잔칫날이었습니다. 어른들 눈치를 봐가면서 잔치음식 얻어먹는 것도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른들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정식으로 손님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 각자의 어머니나 주인아주머니가 손에다 얼른 한주먹 쥐어주는 그런 비공식적으로 얻어먹는 잔치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날에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새 옷을 입고 마을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고 다녔습니다. 어머니가 일 년에 꼭 두 번 추석날과 설날에는 새 옷을 해주셨는데, 이 새 옷을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세배를 다녔습니다. 세배는 음력정월보름까지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또 정월보름에는 오곡밥을 먹고 저녁에는 달집 태우는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부스럼나지 말라고 나이만큼 표시를 해서 저고리에 차고 다니던 엄나무 패와 집안에 잡귀출입을 막기 위해서 일 년 내내 싸리문에 걸어놨던 엄나무다발을 달집에 던지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매년 정월보름에 열리는 이 달집 태우는 행사는 항상 우리 집 싸리문 앞에 있는 논에서 했습니다. 속에다 불쏘시개를 넣고 겉으로는 생솔가지로 쌓아서 원뿔노적가리마냥 만든 그 달집은 한 번 불이 붙으면 꺼질 줄을 몰랐습니다. 생솔가지 타는 소리와 함께 그 달집은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맹렬하게 타올랐습니다. 사방이 대낮같이 밝아진 달집 주위에서 우리들은 불 깡통을 돌리며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큰 명절에나 집안에 제사가 있는 날은 큰집(큰아버지)에 가서 하룻밤 자면서 사촌형제누나들과 밤늦게까지 함께 놀았습니다. 이렇게 명절이나 조상님제사 때면 사촌형제들이 큰집에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지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