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고개·연재소설

미망의 인생 고개

하이 드림 2009. 3. 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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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이 희미하지만, 내가 어려서 큰누나가 한마을  경주 이씨 가문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형이 하나, 둘째 누나, 네 살 아래인 남동생,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도청소재지로 이사 나올 때 젖먹이였던 둘째 남동생, 도시로 나와서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태어난 막동이. 나는 이렇게 7남매 중 위아래로 딱 중간에 태어났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1학기까지 시골에서 꼬마농사꾼으로 살았습니다. 웬만한 농사일은 못 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나는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바지게에다 소꼴을 베 오는 일. 작두로 여물울 썰어서 소죽 끓이는 일. 산에 가서 철마다 땔감을 해 오는 일. 봄에 벼 심는 일. 벼 심을 때 벼줄 잡는 일. 가을추수때 벼 베는 일. 지게로 벼 지어 나르는 일. 홀태에다 벼 훓는 일. 탈곡기를 신나게 밟으면서 벼 타작하던 일. 도리깨로 콩 타작하던 일. 절구질하는 일. 디딜방아 밟는 일. 아버지를 따라 물레방앗간에 가서 쌀 찧어 오던 일 등. 각종 논일은 물론 각종 밭일 등….

 

   나는 농촌에서 해야 할 일은 거의 다 해본 영리하고 조숙한 꼬마농사꾼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가을추수가 끝난 그해 늦가을, 나는 산골촌놈에서 도시 놈으로 하루 사이에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시골에서 언뜻 들은 이야기는 형의 공부 때문에 도시로 이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나온 형은 도시에 와서 늦깎이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학교는 변변치 않아 보였습니다.

 

  내가 형하고 일곱 살 차이니까 웬만해선 잘 모를 때입니다.  나는 이때부터 가정 중대사에서 배제된 국외자였습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한 도시생활이었지만, 나는 도시생활이 좋았습니다. 우선 학교 점심시간에 배를 곯지 않아서 좋았고, 엎어지면 코 닿을 데 학교가 있어서, 학교 다니기가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시로 와서, 나는 금방 도시생활에 적응을 했습니다.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촌놈티를 완전히 벗었습니다. 멋진 교복에, 멋진 교모, 멋진 검정운동화.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둘째 고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