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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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집안에서 몇 개월만 내 뒷바라지를 했어도, 나는 은행에 취직을 해서, 우리 집 가정살림살이를 내 손으로 잘 꾸려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나와 우리가족의 운명은 백팔십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내 학업성적은 전체 상중 상에 속하는 실력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아버지와 형의 무능과 무책임이었습니다. 형은 군에 있을 때 꽤나 좋은 자리에서 군복무를 하다가, 제대를 한 후에도 한동안 문관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그때가 형 인생의 황금기였습니다. 그런데, 제대를 한 후 가족은 돌보지 않고 자기혼자 바람만 피우고 다녔습니다.
나는 형이 제대로 무슨 직장생활을 하는 걸 보지 못 했습니다. 자기가 장남이고, 부모는 늙어 생활능력을 잃었으며, 동생들이 다섯이나 되는데, 가족은 돌보지 않고, 혼자 바람만 피우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찾아다니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또 바로 밑에 동생이 내 속을 썩였습니다. 비상금이라도 몰래 좀 만들어 놓으면 귀신같이 찾아냈습니다. 나는 학급반장을 했기 때문에 주머니에 조금씩 잔돈푼이 있었습니다. 결국, 동생은 내 비상금을 털어가지고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집에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남동생 그리고 코흘리개 막동이 이렇게 다섯 식구가 남았습니다.
나는 졸업을 육개월쯤 앞둔 학생으로서 아무 대책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그만두고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눈빛이 날이 갈수록 차가워졌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증오에 찬 어머니의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나를 미워했는지…!? 다 낡아빠진 책상 하나를 들고 몇 차례 집을 들락거렸습니다. 가정교사로 이집 저집을 전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여름방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