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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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누나의 결혼식은 참으로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충분한 준비도 없이 허름한 초가집에서 치른 구식결혼이었습니다. 인륜지 대사를 이렇게 초라하게 치르다니, 나는 참으로 슬프고 민망스러웠습니다. 우리 집은 가뜩이나 철길 가에 있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누나 결혼식이 끝나고, 나는 다시 서울로 왔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조차도 피했습니다.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서울에서 고학이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참이었습니다. 낮에는 종로에 있는 학원가에서 서성이며 공짜수업을 받기도 하고, 공부하면서 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찾아봤지만, 마땅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당시 서울엔 고향친구 하나가 셋방을 얻어 혼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밤에 잠자는 것은 친구 셋방에서 신세를 지고, 하루에 아침 한 끼씩이나마 누나한테 얻어먹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얻어먹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친구 셋방이 영등포구 영일동이라고 옛 OB 맥주회사 앞에 있었고, 누나 집은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었기 대문에, 걸어서 30분이 족히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밥 한 끼 얻어먹기 위해서 왕복 한 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는 고통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누나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방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누나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날은 그냥 돌아왔습니다. 아침 새벽시간에 30분간을 걸어갔는데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하고 다시 또 30분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직감이 이상했습니다. 아, 내가 오는 것을 싫어하는구나…!! 나는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당시 친구 셋방에는 친구외삼촌과 내가 같이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친구한테 밥까지 얻어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 역시 자기누나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학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틀인가를 굶고, 나는 다시 누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또 누나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나를 피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나는 순간적으로 빈밥상에 놓인 매형 시계를 주머니 속에 넣고 나왔습니다. 팔아먹자고 들고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면서 너무나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때 너무나 큰 충겨을 받았습니다. 차라리 내 앞에서 대놓고 사정이야기를 하든지, 아니면 차비라도 줘서 집으로 가라든지,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최소한의 말미는 줬어야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친구 셋방으로 누나가 찾아왔습니다. 시계는 찾아가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배가고파서 할 수 없이 몇 번 찾아갔으나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하고 떠밀려나왔습니다.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내 영혼은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친구 집에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날시는 추워지는데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