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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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서울에는 중학교동창생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세탁소 직원으로 있으면서 나보다 한 학년 늦게 공업고등하고 3학년에 재학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 학년을 꿇은 겁니다. 그 친구의 주선으로 나는 친구 학교에 3학년으로 편압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을 다녔을 것입니다. 매일 교복을 빌려 입고 이름표를 바꿔달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교복 살 돈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그것도 용산에서 마포까지 걸어서 다녔습니다. 그 고통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 가서는 미리 이름표를 바꿔달지 못하고 갔다가 복장검사에 걸려서 선생한테 얻어맞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참으로 예상치 못한 인생의 쓴맛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의식주문제 해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는 의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머리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점점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대학교는 고사하고 고등학교 졸업도 못한 나는 변변한 직장도 없이 신문배달을 하면서 근근히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하릴없는 건달이었습니다. 공부하고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에이,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점점 건달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권투실력으로 나는 시외버스주차장바닥에서 꽤나 알아주는 건달이 됐습니다.
무심한 세월만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질 번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끝끝내 그 구렁텅이에는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당분간 시외버스주차장바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이 끝나고 일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제정신이 조금 들면서, 나는 고향에 두고 온 사랑하는 그녀의 근황이 몹시 궁금하고 보고 싶었습니다.
나에겐 고등학교시절 2년여 동안 은밀히 사랑을 나눈 애인이 있었습니다. 하늘에 날개 돋친 천사들까지도 부러워할 만한 그런 순수한 사랑을 나눈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사범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보다 두 살 연하이고 한 학년 아래인 여학생이었습니다. 서로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해서 내가 스물일곱 살이 되고, 그녀가 스물다섯 살이 되면, 우리는 꼭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기로 언약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열심히 공부해서 초등학교교사로 꼭 발령을 받도록 독려를 했습니다. 나는 한 학년 선배였기 때문에 보던 참고서 특히 영어참고서를 갖다주며 열심히 공부하도록 그녀에게 애정을 쏟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내가 산책을 갈 때면, 그녀는 조카인 듯이 보이는 어린애를 업고 그녀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같이 내가 아침산책에서 돌아올 때까지 문 앞에서 그렇게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분명 자신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나에게 알리려는 하나의 의사표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