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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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때 당시, 내가 친구네 식구들과 한 집에 살면서 친구어머니나 친구의 그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친구와 친구어머니께서 나를 믿고 또 의지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그런 가정의 중대사를 나한테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친구네 집 속사정을 알게 된 나는 어떻게든지 친구의 그 간절한 부탁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를 위하는 일이라면, 아니 친구의 가족전체를 위하는 일이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형수는 스물한 살 된 딸을 데리고 혼자서 양아들을 키우며 시집식구들의 식생활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떠돌이 옷 장사를 하면서였습니다.
나라고 뽀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네 집에서 자신들의 중대사에 나를 개입시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싶었습니다. 그것은 친구가족들이 나를 자신들의 온전한 가족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복안이었습니다. 그 복안이라는 것이 친구조카와 나와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날 이후 내 인생의 운명을 결정짓고 말았습니다.
당시 친구 집에는 이미 혼기가 찬 친구여동생과 여자조카가 있었습니다. 친구여자조카도 그때 스물한 살이 돼서 이제 시집갈 때가 된 때였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를 도와 가정경제에 일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두 모녀와 은밀히 만나서 부탁받은 그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둘이 벌면서 따로 나가 살면 떵떵거리고 잘 살 텐데 식구 많은 시집에서 왜 이 고생을 하고 계십니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운을 뗐습니다. 시집식구들은 모두가 형수님 팔자 탓에 집안살림살이가 이 지경이 됐다고 믿고 있습니다. 형수님께서도 시집식구들의 속마음을 알고는 있지 않습니까??
친구형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집식구들의 분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온 눈치였습니다. 친구형수는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만나서 몇 차례 이야기를 부고받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친구형수모녀와 한 식구가 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운명을 함께 할 가족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전개가 있으면서부터, 나는 친구조카와 공공연하게 일종의 교제 같은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여동생이라면 몰라도 친구조카와 교제를 한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매일 저녁퇴근시간에 친구조카 회사 앞에 가서 기다렸다가 같이 퇴근을 하고 또 둘이서만 만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동안 공꽁 얼어붙었던 이성에 대한 감정도 서서히 녹아내렸습니다.
우리가 만나서 이렇게 한식구가 되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 년 이상 한집에 살면서 이심전심으로 어느 정도 서로를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몇 차례 은밀히 만나면서 서로 깊은 신뢰와 애정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며 또 서로를 의지하게 됐습니다. 나는 친구의 여동생이 아니라 친구조카와 한평생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