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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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큰며느리의 나태한 생활태도에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사실 나처럼 아침형인간타입이 아닙니다. 아내는 새벽잠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 둘이서 살 때는 의당 그러려니 하고 아내가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지만, 아들며느리하고 같이 살면서도 근 일년 가까이 토요일 일요일을 막론하고 아내혼자서 동동거리며 아침을 준비하다보니 힘들고 짜증이 났던 겁니다.
손자여석은 또 가관이었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면 정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다 큰 여석이 방에서부터 발가벗고 화장실까지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 고치도록 주의를 줘도 소용없었습니다. 애비라고 하는 작자가 하는 말이 나를 더 실망시켰습니다. 그냥 예쁘게 봐주면 안 되느냐고 오히려 불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한집에 살면서 서로 지킬 도리는 지켜야지, 부모는 자식한테 부모도리를 다하려고 하는데, 자식은 제멋대로 하면, 이건 같이 살아야 할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하고 같이 살면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어른을 공경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저희식구끼리 격식 없이 자유롭게 살았어도 늙은 부모와 같이 살게 되었으면 그리고 저희도 나이가 40이 됐고 제자식도 중학생이 되었으면, 이제 저희들 생각도 좀 바꾸고 어른들 생각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생활습관문제로, 손자 화장살버릇 때문에, 큰아들과 여러 차례 다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들놈은 한 번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정당한 지적을 하면 다소곳이 받아들여 고치려고 노력을 해야지 아버지 앞에서 턱 쳐들고 대드는 것은 부모를 능멸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40 이 다된 자식한테 이런 대접을 받고나니,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자식나이가 40이 됐으면 저도 이제 아버지하고 같이 늙어가는 나이가 된 것입니다. 손자여석도 할아버지 이야기는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오히려 할아버지 이야기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와 나는 또다시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 아들네가 해결하지 못한 빚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천만원도 넘는 빚이,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빚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나는 참으로 아들놈이 야속하고 미웠습니다. 며느리도 손자여석도 다 보기 싫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나는 매월 이십만 원씩 3 년 가까이 적립해온 주택부금통장을 해약해서 며느리통장에다 입금시켜 주었습니다. 사실 돈 문제는 부차적인 겁니다. 돈은 긴요할 때 쓰자고 버는 것입니다.
사실, 주택부금통장은 혹시라도 두 아들한테 피치 못할 무슨 문제가 생기면 쓸 수 있도록 장래를 대비해서 저축해온 비상급이었습니다. 기회가 있어서 아파트를 하나 분양받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 부어나갈 요량이었는데 일이 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