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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산 고개를 둘씩 넘어서 십리길이 넘는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에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한쪽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로써 양쪽 논 사이로 나있는 겨우 한 사람 다닐 수 있는 좁은 논두렁길이었습니다. 학교까지 가는 도중에 한두 개의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마을입구에 들어가서나 길이 조금 넓어서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을 수 있었지만, 마을을 지나고나면, 길은 다시 또 논두렁길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길을 갈 때면 우리는 항상 일렬종대로 걸었습니다.
다른 한쪽 길은 한 오리쯤 시골길을 걸어나가서 신작로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두 길에 다 비교적 널따란 개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좀 많이 올 때면 개울물을 건너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오곤 했었습니다. 전형적인 시골길에 있는 개울은 학교가 있는 읍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십리 길을 다 가서 되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십여 리가 넘는 길이 여름에는 논에서 벼가 자라고, 밭에서는 밭곡식이 자라면서 온통 초록물결을 이루었고, 가을이면 오곡백과가 익으면서 온통 황금물결로 출령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봄에는 방과 후 집에 오면서 배고프면 찔레넝쿨 속에서 찔레꽃과 찔레 순을 따먹고, 가을엔 방과 후 집에 오면서 누렇게 익은 벼이삭을 몇 개 뽑아서 참새처럼 벼 알갱이를 씹어 먹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니는 신작로 가에는 사과나무과수원이 하나 있었는데, 이 놈의 과수원이 말썽이었습니다. 가을에 빨갛게 잘 익은 그 사과나무과수원 옆을 지나가다보면 그거 하나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습니다.
하루는 큰맘 먹고 과수원울타리 개구멍으로 숨어들어가 사과 몇 개 따다가 들켜가지고 집 방향으로는 가지 못하고 오던 길로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치던 일도 있었습니다. 허리춤에 맨 책가방에서는 필통 속 연필 부딪치는 소리와 양은도시락 속 반찬통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엔 집에서 몰래 댓님 맨 바짓가랑이 속에다 쌀을 훔쳐가지고가서 엿을 바꿔먹거나 찐빵을 바꿔먹던 일 등. 수많은 추억들이 빛바랜 흑백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갑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목에는 중간쯤에 큰집과 둘째 큰집이 있었고, 읍내에는 큰이모네집이 그리고 읍에서 오리쯤 떨어진 마을에는 막내이모네집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세 자매 중 맏딸이었고, 아버지는 사남매 중 막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