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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리고 한참 후, 어는 날 마을뒷산으로 숨어들어갔던 인민군들이 하나둘씩 마을로 내려와서 입고 있던 인민군복을 마을사람들 옷으로 갈아입고는 또 하나둘씩 마을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런 행렬은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인민군들이 마을을 빠져나갈 즈음에 하늘에서는 시꺼멓고 큰 비행기 대신 작고 하얀 비행기가 폭탄을 퍼붓지 않고 몇 날 며칠 계속 삐라를 뿌리고 다녔습니다. 비행기가 붕,…하고 낮게 날다가, 공중에서 삐라뭉치를 내던지면, 삐라는 춤을 추면서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산 속 나무위로 떨어지기도 하고, 눈 쌓인 논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졌습니다.
인민군들에게 자수를 권유하는 삐라였는데, 내용이 뭔지는 우리가 알바 아니었고, 우리는 열심히 비행기를 쫓아다니는 게 일이었습니다. 어른들 이야기와 들리는 소문으로는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휴전이었지만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인민군이나 국군의 총소리는 멈췄고 마을은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삐라뿌리는 비행기를 쫓아다니면서 삐라줍는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우리는 누가 많이 줍는지 시합을 하기도 했습니다. 삐라는 딱지를 만드는데 사용했습니다.
조용하던 산골마을에 붕…, 붕…, 하고 비행기 소리가 나면,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방향만 잡고는 무작정 뛰고 또 뛰었습니다. 비행기는 낮게 날다가도 우리가 가까이 가면, 또 붕,붕…하고 날아올라갔습니다. 꼭 우리를 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인민군과 국군들이 빠져나간 산 속을 다니면서 탄피 줍는데도 재미를 붙였습니다. 나는 인민군한테서도 경험을 했고, 국군한테서도 경험을 했었지만, 총 쏘고 난 후, 탄피에서 뿌옇게 피어나는 그 화약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사용하지 않은 탄알에서 생으로 빼낸 화약을 휘발유에 타서 회충약대용으로 먹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민군도 국군도 다 빠져나간 어느 날, 마을 앞 산 속에 가보니, 까만 전선이 나무에 거미줄처럼 걸려 있기도 하고, 땅비닥에 그냥 널려 있기도 했습니다. 산 속에는 탄피는 물론 사용하지 않은 탄알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한테는 모두 새로운 장난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산 속은 전부가 우리의 놀이터였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