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고개·연재소설

미망의 인생 고개

하이 드림 2009. 4. 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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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더 이상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 한 사람 그 집에 가서 항의 한 번 하는 식구도 없었습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이때 형은 형수와 둘이 따로 나가서 빵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빵장사라도 해서 파산지경에 이른 가족들의 생활을 도우려나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형은 당시 집안 형편상 결혼할 계제도 아니었는데, 억지결혼을 하자마자 따로나가 자기 살길부터 챙겼습니다. 가족들이 먹는지 굶는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이미 생활능력을 잃었고, 나와 어린 동생 둘이 남았는데 먹을 양식조차 보태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매일 야채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행상을 하는 것을 내가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나는 참으로 비통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동생 하나는 제 입이나 얻어먹으면서 기술이나 배우라고 아버지가 동네이발소에 보냈고, 막동이동생은 코흘리개였습니다.

 

   학생인 나는 죽어라고 공부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집안 형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세세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오직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때는 형이 있고, 누나도 공장에 다니고 있었고, 부모님이 계시니까, 집안형편은 그럭저럭 돌아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나한테 버림받고 어쩔 수 없이 고향 집에 내려와서 잠시 정신을 가다듬는 동안, 나는 친구 집에서 가을추수를 거들며 보름동안 노동일을 하고도 품삯 한 푼도 못 받고 도둑누명까지 쓰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두 번씩이나 버림받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큰 영혼의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무한테도 의지할 수 없는 천애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뭔가 집안 분위기가 좀 바삐 돌아가는 낌새였습니다. 알고보니, 아버지가 우리 집 마지막 재산인 초가잡 한 채 있는 걸 파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점심 때쯤 아버지가 집 판 계약금을 벽장에다 두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습니다. 계약금을 훔쳐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미쳤기러서니 집 판 계약금을 통째로 갖고 뛸 위인은 못 되었습니다. 서울 갈 차비하고 약간의 비용만 내가 갖고 나머지는 친구를 통해 돌려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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