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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악인이 盛(성)하고, 善人(선인)이 도탄에 빠져 고통 받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도탄에 빠져 고통 받은 선인의 상쳐 받은 영혼을 저 세상에서나마 구원해 주고, 보상해 주기 위해서, 신이 계시고 또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나는 분을 풀길이 없었습니다. 이미 내 인생은 뒤죽박죽이 되었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나는 점점 자학의 길로 뻐졌고, 아무것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냥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신세였습니다.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냥 길바닥에서 세월을 보내며, 이곳 저곳 발길 닿는 대로 시골농촌을 떠돌아다니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시골농촌에서 자란 나는 농사일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골에서 밥은 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품삯 받은 돈으로 최소한의 입성은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도시에 와서 얼쩡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춥고 배고프고, 잘 곳이 없다고,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으면 아무 중국집이나 들어가서 실컷 먹고, 부수고, 경찰서유치장으로 갔습니다. 며칠씩 유치장에 있다가 나와서는 또 먹고 부수고, 또 다른 유치장으로 갔습니다. 한동안 그런 생활이 계속됐습니다. 집도 절도 없고, 춥고 배고플 때, 갈 곳은 그 곳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서유치장으로 가면 숙식이 해결됐습니다. 아무리 크게 사고를 쳐도 무전취식으로 유치장에 가면 5일 구류가 고작이었습니다. 한 해 겨울을 나는 이렇게 서울에 있는 경찰서유치장을 순회하면서 보냈습니다.
무전취식으로 유치장에 가기 싫으면, 나는 병원에 가서 피를 팔아 연명을 했습니다. 피를 파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원자가 많아서 경쟁도 심했습니다. 일단 사전신체검사를 받아야 하고, 체중도 체크를 했습니다. 약골은 피도 팔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술만 퍼먹고 살았으므로, 나는 거지 중에 상거지였고, 몸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체중이 미달해서 피를 팔 수 없을 땐 적당한 크기의 돌 하나를 허리춤에 몰래 숨기고 체중을 통과하곤 했습니다. 이건 정말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철저하게 학대했습니다. 그리고 막다른 골목까지 나를 몰고갔습습니다. 그러나, 아침이면 열락없이 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피를 팔은 돈으로 수면제를 사기 위해 약국을 전전했습니다.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면제를 사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면서 처절한 회한이 밀려왔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관하기에도 이미 너머 지쳐있었습니다. 그냥 뜨거운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피를 팔은 돈으로 죽기 위해서 약을 사러다니다니…!?
나는 다시 피를 팔아 무전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어느 해 여름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광주, 이천을 거쳐 충청도 어느 농가에서 농사일을 거들어주며 머슴처럼 일을 했습니다. 고학생이라고 핑계를 댔기 때문에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휴학생이 되고, 또 어떤 때는 고학생이 되어, 나는 이렇게 시골농촌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주머니에는 얼마간의 여유 돈이 생겼습니다. 시골농촌에서 그동안 정상적인 의식주생활을 한 덕분에 나는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골사람들의 따뜻한 인정 속에 그동안 황폐해진 마음도 어느 정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