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고개·연재소설

미망의 인생 고개

하이 드림 2009. 4. 10. 06:46

-27-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함께 서울행 열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또 그후 우리는 몇 차례 더 만났지만, 우리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어느 비오는 날 오후였습니다. 나는 그녀가 보고 싶어 하루는 그녀의 학교로 찾아갔습니다. 논길을 지나고 들 꽃이 피어 있는 한 시골길이었습니다. 면소재지 초등학교였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찾아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동료교사라면서 내가 찾는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말 없이 돌아섰습니다.

 

   찾아갈 땐 화창했던 날씨가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세찬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닐우산을 하나 준비했지만, 나는 이미 흠뻑 젖은 뒤였습니다. 나는 빗속에서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다시는 찾지 않았습니다. 어영부영 세월만 흘러갔습니다. 나는 사랑도 꿈도 모두 잃어버린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혼백이 없는 허수아비와 같았습니다.

 

   사랑은 이론도 학설도 아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 속에서만이 확증되는 생명적인 사실이다.” 라는 말이, 뼈에 사무쳤습니다.

 

    나는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당분간은 시외버스주차장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술에 취해서 하루하루를 잊고 살아야 했습니다. 술에 취해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었습니다. 주먹을 쓸 줄 아는 젊은 놈이 술에 취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나는 매일매일 진지하게 사는 게 아니고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나는 한 때 술에 찌들어 노숙을 일삼았습니다.술에 취하면 거적을 뒤집어쓰고 남산풀밭에서 송장처럼 누워서 잤습니다. 술에 취한 채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새벽이 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60년대 초 남산엔 제법 노숙자들이 많았습니다. 여름한철 남산은 노숙자들의 안식처였습니다. 노상벤치를 침대삼아 그렇게 춥고 지루한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이면 숲속 이곳저곳에서 “야호” 하고, 기상을 알리는 노숙자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느 날은 멋들어지게 명곡이 메아리치는 날도 있었습니다. 산속엔 여기저기 개울물이 있어서 세수도 대충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열시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한 그릇에 200원 하는 재건국수를 먹고 살았습니다.

 

   나는 고작 재건국수 한 그릇을 먹고 하루를 버텼습니다. 그것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마저 굶어야 했습니다. 200원짜리 국수 한 그릇을  먹고는 다시 산으로 갔습니다. 인왕산, 북악산, 남산 등, 서울근교 산은 여름한철 나의 숙소였습니다.

 

   한참 젊은 나이에 굶기를 밤 먹듯이 하면서, 나는 한동안 그렇게 산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물배를 채우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밤에 배가고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땐, 산 아래 있는 가정집부엌에 몰래 숨어들어가 찬밥 있는 것을 훔쳐다 맨밥으로 먹었습니다.

 

   나는 한동안 이렇게 풍찬노숙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무전여행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해 여름 나는 시골농촌으로 걸어서 하루에 백리도 걷고 이 백리도 걸었습니다. 가다가 농촌 일을 거들어주고 여비를 벌기도 했으며, 잘 데가 없으면 경찰지서에 들어가서 자고가기도 했습니다. 걷가다 잔칫집을 만나면 농주를 배불리 얻어먹고 취해 남의 집 헛간에서 정신없이 쓰러져 자기도 했습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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