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고개·연재소설

미망의 인생 고개

하이 드림 2009. 4. 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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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엔 항상 영어책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산에 가서 소리내서 읽고,외우고, 또 읽고 외우고, 나는 그렇게 영어책 한 권을 통째로 외웠습니다. 이렇게 나는 산에 가서 영어 Reading연습도 하고 산책을 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아침등교 길에서 그녀는 어느 사이에 나와 반대방향에서 소리 없이 걷고 있었습니다. 나는 길을 갈 때에도 항상 손에 영어단어장을 들고 걸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면 옆에서 누가 걷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나는 공부밖에 몰랐고, 특히 영어공부에 몰두했습니다.

 

   우리 집은 철길 옆에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기찻길 옆 초가집이었습니다. 철길을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의식하며 등교를 했습니다. 내가 학교에서 늦게가지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 그녀가 또 우리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공부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한동안은 그녀의 출현에 소극적으로 대했습니다. 그리고 공부 외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시때때로 내 앞에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이 꿈속에서조차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됐고, 그녀를 너무도 순수하게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정신적인 사랑은 물론 육체적인 사랑까지 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학생의 신분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항상 도덕적으로 그녀를 리드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우리는 밤에는 가까운 학교운동장이나 으슥한 골목길에서 만나고, 휴일 날은 항상 호젓한 산속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육체적인 사랑이 뜨거워질 때면, 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처녀성을 지켜주기 위해서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나에게 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영원한 사랑과 장래의 행북을 위해서 순간의 욕정을 이겨내자며, 그녀를 정신적인 사랑으로만 품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다니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성숙한 여인이 되어 좋은 선생님이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순간의 육체적인 쾌락보다는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을 꿈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밤, 나를 찾아온 그녀는 시름에 찬 얼굴로 알 듯 모를 듯 작별을 암시하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저만치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얼른 그녀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녀가 어느 한 여관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단순히 이론으로만 그녀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 당시 나는 그녀의 영혼만을 사랑할 수 있었을 뿐 그녀의 육체를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내 입장에서는 그녀를 책임질 수 없었고 사랑하는 그녀의 소중한 장래를 망쳐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내가 그녀의 모든 것을 가진 후, 그녀가 학생의 신분을 잃는다면 그것은 당시로서는 그녀에게는  물론 나에게 있어서도 도덕적인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차라리 여승이 되겠다면서 그날 밤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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