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고개·연재소설

미망의 인생 고개

하이 드림 2009. 4. 17.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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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얼마 후, 친구여동생을 먼저 결혼시키고, 우리 세 사람은 방 한 칸을 얻어 따로 살림을 나왔습니다. 내가 직접 손수레에 이삿짐을 싣고 이사를 했습니다. 사실, 나는 그냥 내 몸 하나만 가지고 따라 나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친구형수는 장모가 되고 친구조카딸은 아내가 됐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동거해 온 아내의 배가 조금씩 불러왔습니다. 내가 스물 일곱이고, 아내가 스물 두 살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모 생명보험회사 영업부사원이었습니다. 우연히 명동엘 나갔다가 문제의 시계사건 친구의 외삼촌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 외삼촌이 모 생명보험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외삼촌의 명함에는 국장(중간 기관장으로 후에 지부장으로 명칭 변경)이란 직책이 적혀 있었고 사무실에 가서보니 하얀 커버를 씌운 멋진 회전의자에 앉아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명동 한복판 근사한 빌딩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해(1967년) 봄부터 생명보험회사 영업부사원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차에서 장사를 하는것보다는 명분 있는 일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밖에 나가 영업활동을 하는 직업이라 고달프긴 했지만, 당시 나로서는 감지덕지한 직장이었습니다.  새로운 직장동료들과 어울리며 그럭저럭 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보험모집업무가 무엇인지는 금방 감을 잡았고, 중간기관장인 국장의 인솔에 따라 나는 서울시내 재래시장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습니다. 주로 상인들을 상대로  보험모집업무가 이뤄졌습니다.

 

   입사한지 일 년쯤 지나서, 나는 국장으로 승진을 하고 멋진 회전의자에 앉아서 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국장을 따리다니던 근무방식에서 내가 국장으로서 산하 직월들을 직접 관리하고 또  필드 선두에 서서 직접 인솔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개천절 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모든 것은 장모님께서 준비를 하고, 나는 그냥 따라만 하면 됐습니다. 고향집에다 알리기는 했지만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서울에는 매형이 군에서 제대를 하고 다니던 공장에 기술자로 복직을 해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식장에서 얼굴을 한번 봤지만 식이 끝나고 사진촬영을 하려고 보니까 매형이라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누나 혼자서 갓난아이 생질녀를 안고 사진 속에 초라하게 서 있었습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축의금 한 푼이 없었습니다.

 

   식장에는 처갓집식구들과 처외가집식구들이 많이 참석을 했고, 회시직원들이 다소 참석을 해서 결혼식은 그다지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식장에선 아내가 많이 울었고, 잔치에서는 내가 많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서러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이렇게 만났고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이렇게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 우리는 처갓집 옆 동네에다 전셋방 두 칸을 얻어 조금은 여유 있는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나는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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