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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술습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온갖 풍상을 겪은 때 묻은 기성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젊은 시절 품었던 이상에 항상 목말라 있었습니다. 어린 아내가 알아주기엔 너무나 큰 고민이고, 뼈저린 고독이었습니다.
아내는 그때 겨우 스물두 살밖에 안된 새댁이었습니다. 세상물정도 잘 모른 나이에 친정어머니의 권고로 일찍 결혼을 해서 술 잘 먹는 삼촌친구와 살자니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지만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충분한 준비도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은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들을 둘씩이나 둔 가장으로서 가정생활은 물론 직장생활도 하고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항상 목마른 욕구에 시달렸고 또 고독했습니다. 방황의 시절을 보내던 중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고, 또 아내를 만나서 갑작스럽게 가정을 이루게 된 나는 좀 더 신중하지 못한 인생선택에 대해서 한동안 자책감도 컸습니다.
그런저런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보험회사 직장생활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오는 권택감과 부질없는 인생고민에서 오는 피로감이 겹쳐 있었습니다.
보험회사 업무에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할 수 없이 회사에 눌러앉아 있었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일 조회를 해서 직원들을 독려하지만 당시 보험계약이라는 것이 참으로 힘겨운 업무였습니다. 매월 겪는 일이었지만, 월말만 되면 그 놈의 계약고(영업실적) 때문에 정말 고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보험은 인간이 만든 제도 중 가장 훌륭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60년대 후반까지 내가 생명보험회사에 재직하고 있을 때만 해도 보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빈서민들에게 생명보험을 가입시키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보험을 일종의 적금처럼 가입시켰던 일도 있었습니다. 저축성만을 강조하고 보장성은 부수적으로 받는 혜택으로만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험 상품 설명에 있어서 정반대로 설명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해약시 해약환급금 설명에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됐습니다. 말하자면, 만약의 경우 경제적 사정변경으로 보험계약을 해약하게 돼도 불입금은 한 푼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대출조건에서는 무조건 가입자의 입장에서 유리하게만 설명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삶에 지치고, 인생고민에 지치고, 보험모집하면서 거짓말하는데 지친 나머지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견뎠으면 지사장 발령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나는 또 하나의 인생의 고비에서 끝끝내 그 고비를 못 넘기고 보험업에 대한 미련일체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생명보험회사에서 화재보험회사로 다시 또 화재보험회사에서 생명보험회사로 이리저리 회사를 옮겨 다니며 한동안 직업선택 문제로 고민을 하고 방황을 하다가 보험회사재직 4년여 만에 완전히 보험업계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보험회사 재직기간 동안 보험에 대한 수요자들(가망객 포함)의 인식변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내가 재직하던 회사에서는 전무후무한 업적 하나도 남겼습니다. 본사 임원도 아닌 내가 지사에 근무하는 중간기관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 소재 각 지사장과 본사 임원들을 회사 강당에 모아놓고 공식적인 보험 세일 교육( 접근 단계에서의 거절처리 방법)을 하고 강사료까지 받고 나왔습니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