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고개·연재소설

미망의 인생 고개

하이 드림 2009. 5. 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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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그럭저럭 한의원사업을 계속 끌고나갔을  텐데,  건물사장이라는 인간이 경영에는 참견을 안 하기로 약조를 하고서는 시시콜콜 경영에 참견하고 나섰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내가 한의원대표로서  단독경영을 하는 것으로 알고들 있었는데, 이 인간이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경영에 혼선이 오고 말았습니다.

 

    나는 투자한 돈만 빼가지고 6 개월만에 빠져나왔습니다. 한의원을 개업하게 된 것도 그 건물사장이 몇 번씩 식당으로 찾아와서 한의원을 같이 하자며 간청을 하는 바람에 친지들에게 운영자금을 빌려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용만 당하고 6 개월만에 한의원사업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나는 십 수 년 동안 종사해온 한약업계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 공부 때문에 할 수 없이 버텨왔지만 아이들도 고등학교까지는 마쳤고 이제는 좀 떳떳한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돌팔이인생, 가짜인생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사소(些少)하고, 하찮은 직업이라도 좀 진지하고 진실한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나는 고생을 하면서 살았어도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요시하면서 살았습니다. 명분을 중요시하고 의리를 중요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소 나한테 불리한 점이 있고 또 손해 보는 일이 있어도 명분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남과 나와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가급적 양보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내가 식당을 개업한 지 벌써 오륙년쯤 흘렀습니다. 나는 다시 식당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이 오십에 마땅히 할 일도 없었습니다. 복덕방에 앉아 고스톱을 치는 것도 금전적인 손실만 가져다 줄뿐 좋은 소일거리는 못 됐습니다.

 

   하루는 한가한 낮 시간에 식당에 앉아서 넋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 에이, 노느니 염불한다고…,  어디 가서 경비원자리라도 한 번 알아봐야겠다.”

 

    나는 별 뜻 없이 한마디 하고 그냥 밖으로 나가 마을뒷산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바로 씨가 되고 말았습니다. 식당종업원 아주머니의 남편이 아파트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때 내 나이 갓 50이었습니다. 면접도 보고 술값도 조금 들이고 해서 바로 취직이 됐습니다. 

 

    나이 오십에, 나는 다시 또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직업의 귀천을 떠나서 고정적인 월급이 있고 열심히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었습니다.

 

   경비원으로 출근을 하면서, 나는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가 없었습니다. 한가지 밤에 잠을 못자서 그렇지 정말 마음이 편했습니다. 48㎏밖에 안 나가던 체중이 65㎏이나 나갔습니다. 입던 옷은 하나도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식당은 아내가 꾸러나갔고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나는 꼬박고박  저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참, 넓고도 좁은 것이 이 세상이었습니다. 내가 경비원으로 있는 그 아파트에 옛날 가정교사자리를 양보했던 친구의 여동생이 결혼을 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입사해서 며칠 안 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누가, “ 오빠…!? ” 하고, 경비실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도 놀라고, 나도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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