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고개·연재소설

미망의 인생 고개

하이 드림 2009. 5. 2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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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다시 큰아들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큰아들 집에서 같이 살다가 헤어지고, 다시 전에 살던 도시로 이사를 해서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그동안 아내가 식당할 때 일수로 얻어쓰고 미리 해결하지 못한 빚도 청산하고 그럭저럭 생활이 안정됐습니다. 아내도 한 반년 정도 식당종업원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십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야말로 빈손으로 시작해서 다시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고 작은아들도 결혼시켜 독립을 시켰습니다.

 

   아내가 식당할 때 나 몰래 진 빚도 갚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큰아들하고 같이 살 때 아내의 빚 채권자가 아들네 집으로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얼마 안 되는 제 어머니의 빚에 대한 부담 때문에 큰아들이 우리를 멀리하고 냉정하게 한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 그렇습니다. 아내의 빚 채권자가 우리가 사는 집주소를 추적해서 찾아온 것을 보고 생각한 것입니다.

 

   첫 번째 큰아들과 헤어지고 나서도,  우리는 큰손자에게 새로운 장난감이 나왔다 하면 금방 사서 붙여주고, 무슨 날이 되면 아내가 가서 입을  옷가지나 신발 등을 계속 사주고 왔습니다. 그리고 큰아들이 곤경에 처하면 즉시 가서 도와주곤 했습니다. 겨울에 가끔씩 가서 보일러기름도 넣어주고, 무슨 일이 생겼다하면  득달같이 가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때까지도 큰아들은 직장생활을 꾸준히 하지 못하고 회사사장 빚보증을 섰다가 되레 저만 곤경에 처하고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중고짐차를 한 대 사가지고  고물장사를 하고 다녔는데 형편이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괘씸하고 미운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변함없이 큰아들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34평짜리 아파트에서 작은아들과 같이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 딴엔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겠지만 하루는 데리고 사는 자식만 자식이냐고 항의를 하면서 일이십 만원도 아니고 돈 수백만 원을 요구하면서 전화에다대고 지랄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자식들 거지꼴 안 만들려고 나는 별 고생을 다했습니다. 자식들을 위하는 일이면  나는 무슨 일이든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큰아들이 왔다 가면 꼭 휘발유 값이라도 줘서 보냈습니다. 

 

    내가 큰아들과 일차 동거에 실패하고 다시, 나 혼자서 생활의 기반을 잡아 작은아들도 독립시키고, 아내와 둘이서 살고 있을 때, 큰아들내외는 과거 저희들 잘못에 대해 사죄를 하고 가끔 왕래를 했습니다.

 

    그리고 작은아들 결혼식에 큰아들이 돈 십만 원을 축의금이라고 가지고 왔었습니다. 그때도 나는 차 기름값까지 보태서 그 돈을 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갑자기 내 신용카드를 빌려달라고 왔었습니다. 참으로 자식이지만 너무나 뻔뻔스러웠습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손자여석 이름으로 적립하고 있던 은행적금통장을 줘서 보냈습니다. 제 아들 장래를 위해서 내가 매달 50,000원씩 근 일년을 적립하고 있던 통장이었습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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