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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가 환갑을 맞이했습니다. 큰아들은 금목걸이 한 냥에 금반지 닷 돈을 해오고, 작은아들하고는 제주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자식들한테 호사스런 대접을 받았습니다.
작은아들이 저희처갓집 옆으로 이사를 가고 별 안부전화도 없을 때, 큰며느리한테서 가끔씩 전부전화가 았습니다. 우리가 작은아들한테 크게 실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희들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까 뭔가를 좀 깨닫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는 자기가 사용하던 휴대폰이었지만 그걸 아내한테 선물을 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나는 이런 큰며느리의 애정과 관심에 콧등이 찡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부모형제의 정엔 물론 자식들 정에도 너무나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내가 관리하고 있던 아파트에서 큰 사고 하나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각 세대로 물을 공급하는 지하저수조가 침수되고 말았습니다. 펌프실의 전기설비와 급수펌프가 몽땅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보통 큰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일요일이라 주민들도 대부분 집에 있을 때였습니다.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아파트 관리업무에 십 수 년여를 종사하면서 마음 편한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늘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스트레스도 남보다 많이 받았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나는 항상 아파트 안전관리에 신경을 썼습니다. 퇴근을 해서도 무슨 사고는 없는지 항상 노심초사했습니다. 퇴근을 한 후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관리소장한테 먼저 연락이 오는 겁니다.
그리고, 단지에서 뭐 사소한 일만 생겨도 주민들이 관리소장한테 직접 전화를 하거나, 부녀회장이나, 노인회장 그리고 입주자대표회장한테서 직접 전화가 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집에 전화가 와도 내가 먼저 수화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전화가 왔다 하면 대개 불길한 전화였습니다.
나는 휴일에도 수시로 아파트에 전화를 해서 별 일이 없는지 확인도 하고 또 가끔씩 불시에 단지순찰을 해야만 했습니다. 만약의 경우 단지에 무슨 사고가 났는데도 관리소장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소장은 일단 입주자대표회의 눈 밖에 나는 겁니다.
시설점검은 직원들의 일상적인 업무로써 평소에 직원들한테 철저히 점검지시를 해오던 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생겨서는 안 될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급수(給水) 중단사고는 정전(停電)사고보다 더 큰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깃불이 안 들어오면 촛불이라도 키고 있으면 되지만 수돗물이 안 나오면 밥 못해먹는 것은 고사하고 화장실문제가 더 큰 문젭니다.
이런 대형사고가 한 번 터지면 관리소장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집니다. 관리소직원들의 근무태도와 책임문제는 물론 관리소장의 거취문제와 손해배상책임까지 확대돼서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관리소장이 책임을 져야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선 사태수습이 먼저였습니다. 그래도, 평소에 성실히 근무를 해온 덕분인지 과격하게 나오는 주민은 없었습니다. 관할구청에 식수차량 지원을 요처해서 하루 종일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했습니다.
그리고 관할소방서에 배수펌프지원을 요청해서 하루 종일 또 물빼기작업에 매달렸습니다. 하필, 일요일에 발생한 사고여서 관공서업무지원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밤늦게나마 비상펌프를 가동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