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고개·연재소설

미망의 인생 고개

하이 드림 2009. 5. 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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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경비생활을 하면서도 이것저것 인생고민이 많았습니다. 차라리 조그만 기술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이런 따분한 생활을 안 해도 될터안데….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이, 세상을  좀 더 떳덧하게 살아가려면 차라리 아무 기술이라도, 기술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50이넘었지만, 내가 살 길은 바로 이거다. 다행히 응시자격에 연령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 퇴근을 하고 바로 직업훈련소에 가서 등록을 한 후, 나는 미련 없이 관리사무소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인생은〈60부터〉라는, 말도 있지 않든가…!?  나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모 건설회사 기능인훈령원(노동부 인정)  전기과에  제일 나이 많은 훈령생으로 입소해서, 6 개월간의 직업교육을 마친 후,  전기공사 기능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매월 35만원씩의 훈련수당을 받고 교육을 받았으며  전기기능사  자격증까지 받게 됐습니다. 내 가슴 속에서는 새로운 희망이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나는 기능인훈련원에서 하나밖에 없는 우수상을 받고  6개월 과정의 훈련을 수료하였으며, 바로 소속회사 아파트 건설현장에 전공(電工)으로 투입됐습니다.

 

   이때가  내 나이 쉰두 살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해서 50 이 넘은 나이에 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나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두어 군데 현장을 옮겨 다니며 6개월쯤 전공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50이 넘은 중늙은이가 공사장에서 노동일을  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몸살을 앓아가면서 힘들게 버텼지만, 공사장일은 그만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 다음에 얻은 직장이 아파트 변전실 안전관리 보조원자리였습니다. 직책은 전기기사였습니다. 경비원으로 있으면서 그렇게 부러워하던 자리였습니다. 그래도 50이 넘은 나이에 전기기능사 자격증이 있어서 쉽게 취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파트 경비원으로 이년여의 생활을 했기 대문에, 나는 아파트 관리업부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3 개월쯤 아파트 관리소에 전기기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듯이, 그동안 그런대로 평탄하게 잘나가던 日常(일상)이었는데 큰아들  집에서 그만 뜻하지 않은 큰 교통사고 하나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당시 큰아들은 우리와 떨어져서 경기도 중부지방의 한 조그만 도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시내에서 조금 들어가,  면소재지 변두리지역에다  대지가 백여 평에 방이 네 개인 근사한 붉은 벽돌집을 한 채 짓게 되었습니다.  큰아들 처갓집 근처였습니다.

 

   큰아들은 우리와 같이 살다가 우리하고는 상의 한마디 없이 저희 처갓집 동네에다 집을 한 채 짓게 되었습니다. 제 처갓집식구들과  어찌 의논을 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근사한 집이 한나 생겼다는 결과만으로 그냥 좋게만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는 대견하게 생각했습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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