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의 인생고개·연재소설

미망의 인생 고개

하이 드림 2009. 5. 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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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나는 큰아들이 집짓는데 보태쓰도록 가지고 있던 월급통장하고 아내 꺼 내 꺼 금붙이란  금붙이는 몽땅  털어서 큰아들한테 주었습니다. 나는 안전한 직장이 있었고, 작은아들도 제대를 해서 제 밥벌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먹고사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큰아들내외가 맞벌이를 하려면 손자여석을 돌봐줄 보호자가 필요했습니다. 큰손자는 그때 겨우 돌이 지난 때였습니다.

 

   큰아들내외는 새집으로 이사를 했고, 나는 아내와 함께 귀여운 손자여석을 보러갔는데 하루는 며느리가 우리와 함께 살기를 간절히 요청해왔습니다. 아내와 작은아들은 큰아들이 처음부터 우리와 상의해서 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를 했지만 내가 우기고 설득을 해서 온 식구가 같이 살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명분은 손자를 돌봐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어떻든, 나는  자식들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는 곳이 변두리지역이다  보니 시내에서 직장생활을 하려면 승용차가 한 대 꼭 있어야만 했습니다. 나는 큰아들명으로 할부차를 한 대 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쯤 운행을 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나는 서울근교 광역시에 있는 한 아파트 변전실에 출근을 하면서 큰아들 집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한참 새로운 인생설계를 하면서 꿈에 부풀어 있을 때였습니다. 작은아들은 미리 큰아들 집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형제가 회사에  출근을 하다가 시내로 들어가는 좌회전 길에서 직진하는 시외버스와 충돌을 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연락을 받고 사고현장에 도착해보니 우리승용차는 반 토막으로 찌그려져 있었습니다. 크게 다치지는 안했다는 사전연락을 받지 않고 현장에 먼저 갔다면, 아마 우리내외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을 것입입니다.

 

    새 차를 사서 겨우 일주일쯤 운행을 했을 때였습니다.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더군다나 상대는 그 지방에 기반을 둔 노선버스였습니다. 이런 큰 교통사고사건은 처음 겪어보는데다 우리승용차는 아직 자동차종합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먼저 아들 둘이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가서 두 사람 건강상태를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가벼운 상처만 입은 상태였습니다. 우리 차 손상상태로 봤을 때 두 아들이 그렇게 멀쩡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날  밤 근심걱정 속에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내고, 나는 아침 일찍 시외버스주차장에 가서  버스회사와 대충 이야기를 나눈 다음 일단 회사에 출근을 해서 사표를 냈습니다.

 

   사람이 곤경에 처하면 별 공상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나는 이제 망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사실 돈만 있으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생활의 안정을 찾았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한 인생살이가 조금씩 안정돼가고 있는 가운데, 뜻밖에 이런 큰 사고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사고의 전말이 어떻게 전개될지 참으로 불안했습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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