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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오륙여 년 동안 근무해온 아파트관리업무에 심한 염증을 느끼기시작했습니다. 밑바닥에서부터 성실히 일을 배우고 관리업무에 적용하며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누구보다도 긍지와 소명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입주재대표회의 부당한 업무간섭에도 당당하게 임했습니다.
아파트관리소직원들은 특히,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회장이나 동별 대표자들의 부하직원이 아니고 당 아파트관리의 최고책임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소신을 이야기했습니다. 항상 성실히 근무하고 당당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이러한 관리철학 때문에, 나는 가끔씩 입주자대표회의나 위탁관리회사와 충돌을 빗기도 했습니다.
나는 나이 60고개중반을 넘었어도 이러한 철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세상의 때가 많이 타서 마음도 좀 탁해지고, 둔감해지고, 처세술도 좀 약아진다고 하지만, 나는 요령도 필줄 모르고, 남을 속일줄도 모르고, 적당히 상대편 비위만 맞추면서 대충대충 넘어가질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처한 위치에서 항상 상대방에게 예의를 다하면서 내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습니다.
나는 한 신규입주아파트에 관리소장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새로 입주를 받는 아파트는 여느 아파트관리와는 그 업무가 조금 다릅니다. 기존아파트의 관리비부과는 당월 사용한 비용을 정산해서 다음 달 관리비로 수납을 받는 후불계산제이지만, 신규입주아파트는 선수관리비(관리비출연금)라는 돈을 입주 시에 입주자에게 미리 받아서 모든 비용에 충당하기 때문에 반드시 예산편성이 필요합니다.
내가 입사한 그 아파트는, 그해 12월 추운 겨울에 입주를 받는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사용검사도 나오기 전에 빈 사무실에 들어가서 직원도 채용을 해야하고, 집기도 다들여놔야하고, 관리관계서류도 다 만들어야하고, 관리비예산편성은 물론 관리계획서도 작성해야하는 자리였습니다.
시공회사상무이사라는 사람이 새로 설립한 빌딩관리회사였는데, 아파트관리는 처음으로 맡은 회사였습니다. 입주아파트 근무경험과 행정능력 없이는 맡을 수 없는 관리소장자리였습니다. 신규입주아파트는 입주시부터 6개월간은 사업주체의 의무관리기간이기 때문에 사업주체와 시행사와의 긴밀한 업무협조관계도 매우 중요합니다.
입주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아파트의 법정필수기관인 입주자대표회의를 구성해서 업무를 인계인수하고 나니까,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관리소 전 직원을 교체하겠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표면상 이유는 사업주체에서 고용한 관리소직원들은 장차 아파트하자처리 과정에서 장애가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모든 입주자관리업무와 시설관리업무 역시 입주자 입장에서 처리를 하고, 입주쓰레기 등 뒷처리도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주었는데 정말 야속했습니다. 월급줄 사람이 모두 나가라는데…, 할 말 없었습니다. 이것이 아파트관리소직원들의 처지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전기기사자격증 덕분에 그 지방에 있는 한 위탁관리회사에 기술인력(技術人力)으로 선임되어 상무이사직책으로 본사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한 4개월쯤 근무를 했을 때, 경기도남부지역에서 제일 월급도 적고 골치 아픈 아파트에 관리소장으로 또 발령을 받았습니다. 근무중이던 관리소장이 갑자기 퇴임하면서 본사에서 대체인력으로 현장에 투입된 케이스였습니다.
그동안 나는 한두 차례 골치 아픈 아파트에 근무해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임하는 단지마다 깨끗하고 살기 좋은 단지로 만들어놓곤 했습니다. 아파트관리소장의 능력여하에 따라 아파트관리가 좌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