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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한 단지에서, 나는 입주해서 십여 년 동안 방치해온 각종 문서들을 문서 창고를 만들어서 정리 보관하고, 관리사무소의 무질서한 환경을 깨끗이 정리 정돈하였으며, 무슨 문제가 하나 터지면 그때 비로소 부랴부랴 실시하던 각종시설물 보수를 일상적인 사전예방점검과 동시에 즉시 보수하는 방식으로 개선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부임하는 아파트마다 실시했던 주간업무계획서를 작성토록해서 직원들의 근무태도부터 고쳐나갔습니다. 당장 급한 일이 없으면 마냥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가 무슨 일이 터져야 비로소 바빠지는 아파트관리의 타성을 고쳐나갔습니다.
주간업무계획서를 작성토록하면, 지난주에 한 일과, 금주에 해애 할 일, 그리고 다음 주에 해야 할 일들이 주간업무계획서 한 장에 일목요연하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하면, 직원들이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고 또 자기 업무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시설물을 일상적으로 점검할 수 있어서 아파트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관리비 많이 쓰는 관리소장을 싫어합니다. 수선유지비 몇 푼 나가는 것을 주민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리소장들은 그냥 대충대충 아파트를 관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설물을 정상적으로 유지관리하려면 당연히 써야하는 비용을 아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부임하는 단지마다 먼저 단지실정에 맞는 관리방식을 채택해서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업무실적을 이룩해놓은 다음 그때 비로소 할 말을 했습니다. 인간관계의 성공이 상대방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신과 실천이 중요하듯이 아파트관리 역시 우선 주민들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관리기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단지에 부임할 때마다, 먼저 아파트관리소직원들이 자신들은 전체주민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인식을 갖도록 정신교육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관리를 자기 집처럼 성실하게 관리할 때, 주민들이 관리소를 신뢰하고, 그것이 곧 자기의 발전을 위한 길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런 관리 철학으로, 나는 여러 가지(시설 및 문서관리의 문제점과 관리소직원들의 처우 개선 등) 골치 아픈 아파트 하나를 또 좋은 아파트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비용이 들어가는 관리행위는 입주재대표회의의 의결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와의 관계 또한 중요합니다.
내가 관리소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은 업무에 대한 싫증에서 비롯되었지만 한 동대표의 지나친 업무간섭이 결심을 촉발시켰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소장이 제의한 안건이든, 주민이나 동대표가 제의한 안건이든, 주민들의 전체이익을위해서 안건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의결기구로서 안건을 의결만 하면 되는 것이고, 관리업무의 집행에 관한 한 집행기구의「長」인 관리소장이 다 알아서 하는 것이데, 동대표가 이것저것 업무집행에 참견하고 매일 관리사무소에 나와서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을, 나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관리업무에 관한 한 전문가인 관리소장이 더 알지, 비전문가인 동대표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얄팍한 지식으로 관리소장을 괴롭히는 태도 그리고 관리소장을 동대표 부하직원처럼 이래라저래라 일일이 간섭하는 태도 또한 나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잘 알면 너 혼자서 관리소장까지 다해먹어라. 나는 단호했습니다.
이러한 나의 단호한 태도는 평소 나의 성격과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의결기구인 동대표자들의 일방적인 업무간섭에 관리소장이 집행기구의 「長 」으로서 자신의 자리보존만을 위해 적당한 대응 없이 저자세로 일관하면 전체직원들한테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관리소장이 직원들을 통솔하는데 있어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파트관리소장이 주민들로부터 관리능력을 인정받고 또 주민들의 신임이 두터워도, 아파트관리소장의 생사여탈권은 전체주민의 민의가 아닌 몇 사람의 입주자대표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 오늘날 아파트관리현장의 현실입니다.(다음 호에서 계속)